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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sonny,과거,재산)

by 망고프랑 2024. 2. 6.

SONNY

손흥민은 본명(孫興慜|Son Heung-Min)으로 1992년 7월 8일 출생으로 32세입니다. 대한민국 강원도 춘천 출생으로 본관 밀양 손 씨 (密陽 孫氏)입니다. 키 183cm, 체중 78kg, 혈액형 AB형에, 발사이즈 255mm로 대한민국 국적의 토트넘 홋스퍼 FC 소속 축구 선수입니다. 포지션은 윙어와 중앙 공격수로 토트넘 홋스퍼 FC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장을 맡고 있습니다. 등번호는 '7'번입니다. 손흥민이 보여주는 득점력의 비결은 순도가 높은 골 결정력인데, 실제로 2016/17 시즌부터 2021년 8월 16일까지 집계한 통계에 따르면, 5대 리그에서 골 결정력이 가장 좋은 선수로 세계적인 축구게임 FIFA 22에서 아시아 역대 피파 오버롤 1위를 달성했습니다.

프로 데뷔 무대인 함부르크 SV 시절 스트라이커 포지션으로 활약하며 좋은 성과를 냈지만 이후 윙어로 포지션을 변경했습니다. 왼쪽, 오른쪽 다 수행 가능하지만 후술하듯 양발이긴 하나 주발이 오른발에 더 가깝기 때문에 왼쪽을 선호하는 편으로 따라서 소속팀이나 대표팀 모두 주 포지션은 왼쪽 윙어입니다. 토트넘에서는 종종 해리 케인과 다른 공격수가 4-4-2 포메이션에서의 투톱을 형성할 때 좌측 측면 미드필더 포지션을 맡기도 했습니다. 슈팅은 왼발을 선호하지만 슈팅과 패스는 양발 구분이 없다시피 하고, 드리블과 세트피스는 선천적으로 편한 오른발을 사용하는 양발잡이라고 보면 됩니다.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 발롱도르 후보, FIFA FIFPro 월드 XI 55인 후보, PFA 올해의 팀 선정,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선수 4회 수상, 아시아인 최초 유럽 빅리그 100골 돌파, 프리미어 리그와 UEFA 챔피언스 리그 아시아 국적 선수 최다 골·최다 어시스트 등을 달성한, 대한민국을 넘어서 아시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프리미어 리그와 UEFA 챔피언스 리그 아시아 선수 역대 최다 득점자이며 아시아 최초로 발롱도르 후보 30인과 FIFA FIFPro 월드 XI 후보 55인에 선정됐습니다. 또한 FIFA 푸스카스상을 수상했으며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선수에 4회 선정됐습니다. 아시아 선수 최초로 PFA 올해의 팀에 선정됐고 프리미어 리그 통산 100골, PL 역사상 6명만이 존재하는 8 시즌 연속 두 자릿수 골 및 프리미어 리그 골든 부츠를 수상한 유일무이한 아시아 선수입니다. 더불어 토트넘 역사상 최다 도움을 기록한 선수이기도 합니다.

2009년 U-17 국가대표팀을 거치고, 2010년 함부르크 SV와 4년 계약과 함께 역대 최고 수준의 초특급 유망주라는 립서비스를 받으면서 해외에서도 상당한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2010년 10월 30일, 18세에 치른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장식하면서 새로운 스타 탄생을 예고했습니다. 이후 분데스리가 전반기 최고의 데뷔, FIFA 선정 세계 최고 10대 유망주 23인 등에 뽑히고, 분데스리가 명문 구단 바이어 04 레버쿠젠으로 구단 역대 최고 이적료 기록을 경신하면서 이적하는 등, 한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차세대 태극전사의 에이스로서 전 세계의 언론으로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15년 8월 28일, 이적료 3,000만 유로 / 2,200만 파운드 (한화 약 408억 원)를 기록하며 프리미어 리그의 토트넘 홋스퍼 FC와 5년 계약을 확정하면서 아시아 출신 축구 선수 중에서 역대 최고 이적료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또한, 아시아 역대 축구 선수 선수 가치 1위를 기록했고, 9000만 유로까지 선수 가치가 높은 선수였습니다. 이처럼 엄청난 활약으로 이른 나이에 국가대표팀에 뽑혀 18세에 A매치 데뷔골을 터뜨렸으며, 이후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월드컵 데뷔골을 넣고 2015 아시안컵에서 3골을 넣는 등 에이스로 활약하며 준우승까지 이끌었고 대회 베스트 11에 선정되었습니다. 또한 2018 러시아 월드컵 멕시코전과 독일전에 연속 골을 넣으며 두 대회 만에 한국인 월드컵 공동 최다 득점 기록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남자 축구 주장을 맡아 금메달을 이끌었으며 이 활약으로 A대표팀에서도 주장으로 선임되었는데 특히, 러시아 월드컵 독일전에 주장 완장을 차고 넣은 골과 아시안 게임 금메달은 한국 축구의 새로운 부흥기가 되는 데 큰 역할을 했으며 이 중심에는 손흥민이 있었고 KFA 올해의 선수 6회 수상으로 최다 수상자에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2022년 6월 대한민국 역대 14번째 선수로 센추리 클럽에 가입했습니다. 그리고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국가대표팀 주장을 맡아 좋은 리더십을 보여주며 한국 축구 역대 3번째이자 원정 2번째로 16강이라는 대기록을 이끌었습니다. 

과거

손흥민은 강원도 춘천시에서 태어났고 어린 나이부터 현재까지 이러한 엄청난 위업을 보여줄 수 있었던 여러 이유 중 가장 핵심은 그의 아버지 손웅정의 교육의 모토와 같은 '열린 교육'에 있습니다. 현재, 축구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는 손웅정은 젊어서 축구 선수로 활약했으나 1994년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인해 선수 생활을 일찍이 마감하게 되었고, 그 후 스페인, 독일, 브라질 등을 돌아다니면서 각국의 유소년 축구를 접했습니다.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손웅정은 춘천 FC를 창설했고, 승리에 목숨을 거는 축구가 아닌 '즐기는' 축구를 모토로 자기 자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차남 손흥민은 축구 선수 지망생들이 다니는 축구 교실을 안 가고 아버지의 개인 교습을 받으면서 초등학교 시절부터 직접 개인기와 탄탄한 기본기를 차근차근 익혔습니다. 기본기를 다지기 위해 혹독한 훈련도 마다치 않았다고 하며 인터뷰에 따르면 공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을 때까지 패스나 여타 다른 기술들을 가르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국 유소년 축구 시스템은 미국과 같은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대학교로 이어지게 되는 진학 시스템으로 좋은 커리어를 지니려고 한다면 결국 눈에 보이는 성과 같은 우승 타이틀을 손에 넣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손흥민의 경우는 이 시스템 자체를 벗어나 있었기에 지금과 같은 재능을 꽃피울 수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에 널리 보급된 유소년 축구시스템은 이런 즐기는 축구를 추구하고 있으나, 손웅정은 축구 강국들의 유소년 축구시스템을 충분히 베치마킹하고 이러한 방식으로 학습시킨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 손웅정은 모든 힘과 시간을 투자하며 축구 실력적인 부분을 떠나서 스포츠맨으로서 보여주는 올바른 자세와 인성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참된 교육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축구 명문 동북고등학교에 진학했으나, 약 3개월 남짓만 뛰고 중퇴했습니다. 이후 독일 함부르크 SV 유스팀에 1년간 유학을 하고 돌아와 2007~2009년 이광종호의 일원으로 U-17 월드컵 대표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동북고 학적은 유지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대한축구협회의 청소년 대표팀 명단을 보면 소속란에 한동안은 함부르크로 기재되다가 U-17 월드컵 당시에는 동북고등학교로 기재가 되었습니다. 당시 대한축구협회와 K리그에 고등부 선수 등록은 안 되었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K리그 데이터 포탈에 손흥민이 서울 유스로서 등록되었던 점, 2008 SBS U-18 고교클럽 챌린지리그에서 서울 소속으로 등번호 26번을 달며 7경기에 나와 도움 1개를 기록한 것이 확인되는 점, 그리고 손흥민의 이적 시 동북고등학교가 연대 기여금을 수령하는 점으로 보아 동북고등학교 축구부의 일원으로 활동한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팩트입니다. 축구부 입단을 위해 3학년에 올라가면서 육민관중학교로 전학을 갔다고 하며 육민관중학교를 졸업해서는 학적상 FC 서울과 유스 협약을 맺은 동북고등학교에 입학할 수 없어 뒤늦게 동북중학교로 전학을 갔다고 합니다. 1학년 1학기 5월에 독일로 떠나기 위해 중퇴를 하고 함부르크 SV 유스팀 신입 시절에 독일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고 합니다. 1년 후 연수 기간이 끝나 유소년 계약을 했어야 했는데 이때 학생 비자가 필요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구단은 정식 교육기관이 아닐뿐더러 당시 다니고 있던 학교가 없어 정말 어렵게 학생 비자를 발급받았던 일화를 보아 독일에서 다닌 고등학교는 잠시 다니다가 졸업은 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프리미어 리그에서 득점왕을 차지하고 통산 100호골 • 50 도움을 달성한 아시아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선수입니다. 그간 클럽에서 보여준 개인 퍼포먼스와 스탯 등은 이미 아시아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는다는 평가를 받지만, 아직까지 주요 리그 및 대회에서 우승 커리어가 없다는 점이 유일한 흠으로 지적받습니다. 현재까지 프리미어 리그에서 뛴 수많은 아시아 국적 선수들 중 한 시즌에 20골 이상을 기록한 유일한 선수로 2020-21 시즌에는 PFA 올해의 팀 선정, 2021-22 시즌에는 아시아 선수 최초로 20골 이상을 기록한 동시에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을 달성했습니다. 홀로 프리미어 리그에서 기록한 득점이 그 리그에서 활약하는 모든 아시아 선수들의 득점을 합산한 것보다 더 많을 정도로 PL 내 득점력이 뛰어난 축에 속합니다. 2016-17 시즌부터 2021년 8월 16일까지 집계한 통계에 따르면 5대 리그에서 골 기대치 대비 득점이 제일 높은 선수로 기록되었습니다. 2018년부터 6년간 국가대표 주장직을 역임하고 있으며, 2023-24 시즌부터는 토트넘 홋스퍼 FC에서도 주장직을 맡으며 리더십 또한 인정받고 있습니다. 

재산

손흥민은 아디다스 글로벌 본사가 후원하는데 아디다스 글로벌 본사가 한국 성인 선수 중 직접 후원 계약을 체결한 건 손흥민이 최초로, 이후 본사가 후원한 한국인 선수로는 이강인, 황의조가 있습니다. 손흥민은  삼성전자 갤럭시 브랜드 앰배서더로 명품브랜드 버버리의 글로벌 앰버서더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해외진출을 목표로하는 메가커피부터 신라면, 타이거비어(맥주), 롯데 GRS 롯데리아, 한국피앤지 질레트(면도기), 태그호이어(시계), 투미(가방)등 광고하고 있으며, 현재 손흥민 신드롬이 국내외를 강타하는 가운데 손흥민 개인의 경제적 파급 효과는 2조 원으로 추정됩니다. 손흥민은 재산이 5000만 달러(약 651억 원)정도로 추정됩니다. 손흥민은 2015년 독일 분데스리가 바이엘 04 레버쿠젠에서 토트넘으로 3000만 유로(약 417억 원)로 이적하였으며, 연봉 주급 이외의 광고료는 10억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손흥민의 차는 페라리 458 이탈리아 쿠페로 약 4억 원이 넘어가며, 전 세계에 50대만 생산되며 출고가가 17억 원이지만 이전 페라리를 5대 이상 구입한 이력이 없으면 구입하기 어렵다는 라페라리도 소유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2억 가량의 아우디 R8을 타고 다녔습니다. 손흥민은 런던의 고급빌라를 소유 중인데 100억 원으로 매매되는 단지입니다. 또한 한국에 있는 성수동 빌라는 25억 가량으로 알려져 있습니다.